가짜 나? 정의구현좌

내로남불

dk · 2026

빠~~~~앙~~~~빵빵빵.

편도 1차로 도로를 달리던 중이었어요. 갑자기 좌측 골목에서 차 한 대가 속도도 줄이지 않고 내 차선으로 끼어드는 거예요. 깜짝 놀라 급하게 경적을 눌렀어요. 쌍라이트도 깜박깜박. 그 차가 멈췄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가, 바로 열이 올라왔어요. 속으로 그랬어요. 그래, 너 오늘 내가 가만 안 둬.

기어를 P에 넣었어요. 내리려고 문에 손을 얹는 순간 —

앞에서 운전석 문이 열렸어요.

한 명.

조수석 문도 열렸어요.

두 명.

그리고 뒷문에서도.

세 명… 네 명.

덩어리 형아같은 아저씨들이 우르르 내리는 거예요.

다가오더니 앞 유리를 퍽 치고 소리를 질렀어요. 내려. 어디 해보자고.

그 순간 나는 —

반쯤 열려 있던 창문에 손을 얹었어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리 없이 쓱.

찰칵.

문 잠금 버튼도 살며시 눌렀어요.

그리고 앞만 봤어요. 아무것도 못 본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조금 전까지 기어 P에 넣고 내리려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는 그냥 거기 앉아 있었어요. 숨도 크게 못 쉬고, 눈도 못 마주치고. 아저씨들이 유리창 너머로 소리를 지르는데 그냥 허공만 바라봤어요. 그 순간이 얼마나 비굴하고 처참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올라요.

뒤에서 차들이 빵빵대고 어수선해진 그 틈에, 옆 길 틈으로 드라이브 넣고 슝 하고 빠져나왔어요. 얼마나 빠르게 달렸는지 기억도 안 나요. 혹시 따라오지 않나 하고 백미러만 보면서, 골목으로 대로로 여기저기 한 10여 분을 무아지경으로 달렸어요.

아까 그 기세는 어디 가고.
창문 쓱 올리고, 문 잠그고, 줄행랑. ㅋㅋ


그게 20대 후반의 나였어요.

면허 따고 운전을 한참 하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나름 운전에 자신이 있었고 기계 조작 같은 것도 잘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쫌 거만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못하는 걸 보면 저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그것도 못하나 싶고. 내가 잘하는 부분에 대한 묘한 우월감 같은 게 있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우월감이 내로남불로 이어진 것 같아요. 나는 되는데 남은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요. 내가 신호를 어기면 눈치 있는 거고, 남이 어기면 막무가내인 거고. 내가 끼어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거고, 남이 끼어들면 얌체인 거고. 그게 얼마나 우스운 논리인지 그때는 몰랐어요.

그리고 그때의 나는 꽤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보면 그냥 못 넘어가는 그런 사람. 근데 왜 그랬을까 싶어요. 살다 보면 나도 신호를 살짝 어기거나 규칙을 슬쩍 넘어가는 순간이 있거든요.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이라든지, 인적이 뜸한 새벽이라든지. 그럴 때 나는 죄책감이 없었어요. 상황 판단이 빠른 거고, 눈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달까요.

그러면서 남이 그러는 건 달랐어요. 혀를 끌끌 차거나, 나는 요령 있게 한 거고 저 사람은 막무가내로 어기는 거라고. 전형적인 내로남불인데, 그때는 그게 내로남불인 줄도 몰랐어요.


그리고 그 정의구현 본능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20대부터 이어져 온 거니까요.

아이들이랑 집사람 태우고 운전하다가 상대 운전자의 잘못으로 불편한 상황이 생겼는데,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또 빵빵거리고 창문 열고, 싸울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결국 집사람이랑 다투고 아이들이 우는 상황이 됐죠.

그때서야 앗차 싶었어요. 나이도 좀 먹고 아이도 있으니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음부터는 조심해야지 양보해야지 하는 생각을 그나마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가끔 그래요. 나도 모르게 그 순간을 못 이기는 거예요. 나도 가끔 어기면서 남이 어기면 꼭 짚고 넘어가려다 후회를 하고, 그게 아직도 반복돼요.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그걸 알아챈다는 거예요. 아, 또 내가 이러고 있구나. 정의롭지도 않은 내가 정의구현을 하려 했구나 하고요.


가끔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스스로에게 묻게 돼요.

나는 왜 그랬을까. 남이 어기면 열을 내면서, 정작 나도 아무도 없는 새벽에 슬쩍 넘어가고 있었으면서. 그게 정의였을까, 아니면 그냥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또 이런 생각도 해요.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젊을 때 누가 알려줬어도 들었을까, 아니면 그냥 내가 옳다고 우겼을까. 아마 후자였을 것 같아요. ㅋㅋ

정말 바보 같았던 젊은 시절이에요. 근데 그게 다 나였어요. 가짜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진짜 나의 한 모습이었던 거예요. 50이 넘어서야 그걸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아직도 알아가는 중이고요.

혹시 비슷한 경험 있으세요?
나는 괜찮고, 남이 하면 눈살 찌푸리는 그 순간.
저만 그랬던 건 아니겠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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