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아내는 조수석에서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고 있고, 남편도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라디오 소리만 흘렀어요.
한참 뒤에 아내가 먼저 말했어요.
“오늘 정말 피곤하고 힘들었다.”
남편은 알고 있었어요. 식사 준비를 혼자 하는 동안 시어머니가 옆에 서서 “우리 아들은 이걸 좋아하는데”, “이렇게 하면 맛이 없어” 했던 것도, 아이 훈육 방식에 대해 “요즘 애들은 너무 오냐오냐 키운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근데 남편은 그냥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엄마가 원래 좀 그래 당신도 잘 알자나.”
아내는 그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날 밤 부부 사이에도 말이 없었어요.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
시부모님, 혹은 장인장모님과의 갈등. 당사자는 배우자인데, 사실 가장 힘든 건 그 사이에 끼인 사람이에요.
한쪽은 내 부모님이고, 한쪽은 내 배우자라 갈등이 생기면 어느 쪽 편도 들기가 어렵고, 그러다 보니 “그냥 넘겨”라는 말이 나와요. 배우자 입장에서는 상처를 무시당한 것 같고, 부모님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있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가는 거예요.
갈등은 이렇게 쌓여요
처음엔 작은 것들이에요.
명절에 음식을 어떻게 하느냐,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 집안일을 어떻게 나누느냐. 한 번은 그냥 넘어가고, 두 번도 참지만 세 번째쯤 되면 말은 안 해도 몸이 반응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이런 대화가 반복돼요.
아내 : “어머니가 오늘 또 그런 말씀 하셨어. 내가 아이한테 너무 오냐오냐 한다고.” 남편 : “엄마가 원래 표현이 좀 서툴러서 그래. 악의는 없어.” 아내 : “나는 악의가 없어도 상처받는다고.” 남편 : “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야?” 아내 : “……”
이 대화의 문제가 뭔지 보이나요?
남편은 어머니를 변호하고 있는데, 아내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상처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남편이 방어하는 순간 아내는 배우자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예요.
끼인 사람이 먼저 해야 할 것
부모님과 배우자 사이에 끼인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배우자의 감정을 먼저 받아주는 거예요.
“오늘 많이 힘들었겠다. 그 말 들을 때 많이 속상했겠다.”
이 한마디가 생각보다 많은 걸 해요.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이 내 편이라는 걸 느끼는 거고, 어머니를 욕하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이 정당하다는 걸 인정해주는 거거든요.
이걸 하지 않으면 배우자는 점점 고립감을 느껴요. 이 집에서 나만 혼자인 것 같다는 느낌이요.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것들
감정을 받아준 다음에는 현실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같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지 구체적으로 물어봐요.
“엄마가 어떤 말씀 하실 때 제일 힘들어?”
막연하게 힘들다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이 반복되는 건지를 파악해야 실질적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거든요.
부모님께 직접 이야기하는 걸 제안해봐요.
쉽지 않지만 사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배우자가 시부모님께 직접 말하는 것보다 자녀가 자기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도 있어요.
“엄마, 저 하나 말씀드려도 될까요. 제 아내가 요즘 좀 힘들어하거든요. 아이 키우는 방식에 대해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가끔 말씀하시는 게 아내한테 상처가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엄마 뜻이 나쁜 게 아닌 거 알아요. 근데 조금만 조심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말이 쉽지 않다는 거 알아요. 근데 이 말 하나가 배우자한테는 아주 큰 의미예요.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나를 지켜준다는 느낌이거든요.
배우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부모님이나 장인장모님과의 갈등에서 배우자 입장도 쉽지 않아요.
상대 부모님이니까 함부로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매번 참자니 한계가 있고.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게 있어요.
직접적인 갈등은 최대한 피해요. 시부모님이나 장인장모님과 직접 부딪히면 서로 감정만 상하는 경우가 많아서 배우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에요.
배우자에게 구체적으로 말해요. “어머니가 싫어”가 아니라 “어머니가 이런 말씀 하실 때 내가 이렇게 느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배우자가 방어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방식이거든요.
좋은 부분도 인정해요. 시부모님, 장인장모님이 잘해주시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걸 인정하면서 이야기하면 배우자도 덜 방어적으로 반응해요.
“어머니가 아이 챙겨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데, 양육 방식에 대해서는 우리가 결정하고 싶어. 그 부분만 좀 이야기해줄 수 있어?”
명절 이후 가장 흔한 장면
명절이 끝나고 부부 사이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둘 다 지쳐있고, 서로 상처도 있고, 뭔가 말은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예요. 이럴 때 이렇게 시작해봐요.
“나 오늘 좀 힘들었어. 너는 어땠어?”
이 한마디면 돼요. 긴 대화를 시작하려 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가 어땠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시작이에요.
그리고 배우자가 힘들었다고 하면 변호하지 말고,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냥 들어요.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이 말 한마디가 그날 밤 부부 사이를 바꾸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요.
이게 반복된다면
한두 번이 아니라 갈 때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근본적인 이야기가 필요해요.
방문 횟수를 줄이거나, 아예 따로 만나는 방식을 찾거나, 배우자가 부모님께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거나. 어떤 방법이든 중요한 건 배우자끼리 먼저 같은 방향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부모님과의 문제는 결국 부부 사이에서 해결돼요. 부부가 같은 편이면 어떤 갈등도 견딜 수 있어요.
연인과 갈등이 반복되는 패턴이 느껴진다면 갈등 해결 대화법, 연인과 같은 싸움을 계속 반복할 때도 함께 읽어봐요.
마지막으로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어요. “나 오늘 많이 힘들었어.”
그 말에 남편이 이렇게 대답했다면 어땠을까요.
“알아. 많이 힘들었겠다. 고마워, 오늘도 수고했어.”
그 한마디면 됐어요.
시부모님, 장인장모님과의 갈등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수 있어요. 세대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살아온 방식도 달라요. 근데 그 갈등 속에서 배우자가 내 편이라는 걸 느끼는 것, 그게 이 모든 걸 버틸 수 있는 힘이에요.
자주 묻는 질문
Q. 시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배우자의 감정을 먼저 받아주는 게 출발점이에요. “엄마 편이야 네 편이야”가 아니라 “네가 힘들었겠다”는 말이 먼저예요. 그 다음에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에요.
Q. 시어머니께 직접 말했다가 사이가 더 나빠질 것 같아요.
직접 말하기 어렵다면 남편을 통해 이야기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요. 단, 남편에게 이야기할 때 “어머니가 싫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 내가 이렇게 느껴”라고 구체적으로 말해봐요.
Q. 장인장모님이 우리 부부 일에 너무 간섭해요. 아내는 괜찮다고 하는데 저는 힘들어요.
배우자가 괜찮다고 해도 내가 힘들면 말해야 해요. 장인장모님을 비난하는 방식보다 “나는 이런 상황이 불편해”라고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 게 좋고, 배우자도 그 감정을 받아들일 여지가 생기거든요.